촉법소년 연령 하향, 사회적 합의와 법제도 개선

 

촉법소년 연령 하향, 두 달의 시간이 우리에게 묻는 것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벽이 있습니다. 만 10세에서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는 이름표를 단 아이들에 대한 기준입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과 디지털 혁명을 겪었고, 아이들의 신체적 성숙도와 사고 수준도 분명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법만은 1953년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지난 2월 24일 국무회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오랜 논의에 불을 붙였습니다. "압도적 다수 국민이 최소한 한 살은 낮춰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 이라는 발언과 함께 두 달간의 국민 의견 수렴 절차가 시작됐고, 정부는 4월 말까지 결론을 내리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3월 6일, 성평등가족부 산하 '사회적대화협의체'가 첫 회의를 열면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왜 지금 촉법소년인가

현행법상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습니다. 소년원 송치나 보호관찰 등이 이에 해당하죠. 그런데 최근 들어 범죄 수법이 고도화되고,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적 불안이 커졌습니다.

실제로 2011년 3,924명이었던 촉법소년 범죄는 2019년 7,364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닙니다. 2008년 전체 소년범죄 중 흉악범죄 비율은 45%였으나, 2017년에는 66%까지 치솟았습니다. 범죄의 '질'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범죄를 저지르는 방식입니다. 한 사례를 볼까요. 한 촉법소년이 친구에게 오토바이를 훔치게 시킨 뒤, 그 친구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절도 사실을 숨겨줄 테니 200만 원을 보내라"고 협박했습니다. 단순한 우발 범죄가 아닙니다. 법의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악용하는 지능적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찬성 측 논리: 책임능력의 변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주장하는 측의 핵심 논리는 "인지능력과 현실이 변했다" 는 데 있습니다.

스위스 심리학자 피아제의 인지발달론에 따르면, 만 12세부터 성인까지는 '형식적 조작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에는 논리적 추론과 추상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적어도 중학생 연령대라면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2003년 소년법 위헌재판에서 전효숙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조기교육 활성화와 물질적 풍요로 인간의 성장 속도가 빨라졌다" 며 현행 기준이 높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20년 전에도 이런 논의가 나왔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냐는 것입니다.

반대 측 논리: 낙인과 구조적 문제

그러나 반대 측의 목소리도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한국아동복지학회 등 5개 학회는 지난 3월 2일 공동성명을 내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국제 인권 규범에 역행하는 퇴행적 조치" 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14세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호주, 독일 등 여러 국가는 오히려 연령을 상향하거나 비구금형 조치를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처벌이 범죄를 막는가" 입니다. 국회입법조사처 김혜미 입법조사관은 EBS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형벌의 위협이 촉법소년의 범죄를 억제할 가능성은 있지만, 이들이 장래의 형벌 가능성을 충분히 계산하고 합리적으로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단계인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소년원 수용 과정에서 또래 간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거나, 낙인이 재범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는 우려도 큽니다. 실제로 여러 실증 연구는 처벌 중심의 징계적 처우가 재범을 억제하기보다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여연대는 더 나아갑니다. "촉법소년은 이미 소년법에 따라 실질적으로 자유가 엄격히 제한되는 강도 높은 보호처분을 받고 있다" 며 "대부분의 소년범죄는 방임·학대·빈곤·유해환경 등 사회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고 강조했습니다.

해외 사례가 주는 교훈

중국은 2021년 형법을 개정해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만 14세로 유지하면서도, 살인·상해 등 일부 중대범죄에 한해 만 12세까지 형사책임을 인정하는 예외 규정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2024년, 13세 중학생이 또래를 살해한 사건에서 이 규정이 처음 적용됐는데, 중국 사회에서는 "개정이 필요했다"는 평가와 함께 여전히 깊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연령 하향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으며, '어떤 범죄에, 어떤 조건으로'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두 달,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

이재명 정부는 4월 말까지 결론을 내리겠다는 계획입니다. 100인 시민참여단을 선발하고, 대국민 정책제안함을 운영하며, 공개포럼도 두 차례 개최할 예정입니다. 노정희 협의체 공동위원장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통계에 기반한 논의가 필요하다" 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전문가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첫째,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흉악한 범죄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애들이 너무 한다", "법이 문제다"라는 여론이 급격히 형성됩니다. 그러나 정책은 특정 사건이 아니라 전체 통계와 장기적 효과성을 봐야 합니다.

둘째, '처벌'과 '선도'는 대립 개념이 아닙니다. 연령을 하향하더라도, 그 아이들이 결국 사회로 돌아올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소년원 내 교육과정을 내실화하고, 정서적 위기에 놓인 아이들에 대한 전문적 개입을 강화하는 인프라 개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셋째,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촉법소년 범죄의 피해자는 대개 또래이거나 더 약한 아이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자만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피해 회복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야 합니다.

넷째, 부모의 책임을 실질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많은 소년범죄가 가정의 방임이나 돌봄 부재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만 처벌할 것이 아니라, 양육 책임을 다하지 않은 보호자에 대한 실질적 제재와 지원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결론: 70년 만의 변화, 신중함과 속도 사이

두 달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70년 동안 멈춰 있던 법을 바꾸는 일은, 마치 거대한 배의 방향을 틀는 것과 같습니다. 급격하게 선회하면 배가 전복될 위험이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암초에 부딪힐지도 모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단순한 연령 하향보다는, 범죄 유형별 차등 접근" 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봅니다. 중국처럼 살인, 강도, 성범죄 등 중대 범죄에 한해 연령 기준을 낮추고, 나머지는 현행 보호체계를 강화하는 방식이 그나마 균형 잡힌 접근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그 후속 조치가 더 중요합니다. 소년원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출원 후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시스템, 그리고 피해자 회복 지원까지 연결되는 "종합적 소년사법 선진화 패키지" 가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1953년,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만든 법으로 2026년의 아이들을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분노와 공포만으로 법을 바꾸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죄'보다 '책임' 이고, '처벌'보다 '예방' 이며, '낙인'보다 '회복' 입니다. 두 달 후,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그 결론이 진정으로 아이들과 사회 모두를 위한 길이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어렵고 무거운 논의를 해야 하는 이유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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